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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IRS OF THE ROUND TABLE
원탁의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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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사람에 따라 일부분이 어둡거나 잔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나뭇잎의 푸른빛이 짙어져가는 계절, 바람이 불어 나뭇잎들이 흩날리던 날이었다.
그런 날, 풀밭이 드리운 언덕에 세워진 의자형태의 성 안에서 두 사람... 아스테리와 폴터가이스트가 창가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스테리, 갑자기 궁금한게 생겼어.”
“뭔데?”
“너는 여기에 어떻게 왔었어?
“음, 잠시만 떠올려보자...”
아스테리는 폴터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하였다. 자신이 이곳에 어떻게 들어왔는가. 생각해보면 꽤나 짧으면서도 어쩌면 긴 시간을 이곳에서 지내왔었다. 아스테리는 눈을 감고 천천히, 그 순간의 시작부터 머리에 떠올려보기 시작했다.
...
이곳으로 오기 전, 아스테리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했던... 지금은 복수를 위한 여행을 했다. 하지만 다른 지역으로 나가본 적이 없던 아스테리는 그나마 있는... 제대로 되지도 않은 지도만으로 표시까지 찾아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끝없는 숲, 사막... 계속 아스테리는 이상한 길로만 빠져갔다.
갈증과 허기는 심해져갔고 가는 길도, 자신의 정신조차도 제대로인지 모를 때 쯤, 그제서 발견한 작은 마을.
아스테리는 일단 무엇이라도 해보자는 마음에 그곳으로 몸을 이끌어 가보았다.
.
.
.
조그마하지만 사람들은 적지 않은 마을.
하지만 몸에 기운의 거의 남지 않았던 아스테리는 둘러볼 여유 따위 없었다. 그저, 목마를 뿐 이였다.
여행을 하며 한동안 열지 않았던 입을 겨우겨우 열어 한 말은...
“실례지만... 혹시 물.... 주실 수 있나요...?”
친절하게도 그 마을사람들은 거리낌 없이 아스테리에게 물을 건네주었다. 아스테리는 받자마자 그 물을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눈앞은 점점 트이고, 정신도 천천히 맑아지는 듯 했다.
갈증을 해소하고 나서야 아스테리는 몇 번이나 감사하다며 정신없이 마을 사람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아스테리는 완전히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제대로 그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흐르는 강 소리, 따스한 햇살, 푸른 나뭇잎, 그리고 시끄러운 마을의 소리들. 그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안심되는 느낌, 마치 과거에 자신이 살던... 지금은 사라졌던 그 마을과도 분위기가 비슷하였다. 그 분위기에 빠져갈 때 쯤...
“저기, 안녕하세요?”
누군가가 아스테리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커다란 분홍색 리본을 머리에 단 흰 눈의 어린 아이. 그 아이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아스테리에게 말을 걸었다.
“방금 전에 오신 것 같은데, 지금은 괜찮으세요?”
“어..어? 그렇지...”
“여기에는 어떻게 오시게 되었나요?”
“사실... 여행을 하고 있었는데 길을 잃은 것 같아.”
아스테리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지도만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길...이라면 제가 아는 분 중에 어떤 분이 잘 알거에요, 그 분은 예전에 도시로 자주 일 하러 갔었거든요! 제가 그 분한테 데려다드릴까요?”
“정말?!”
아스테리는 그 말을 듣자마자 표정이 밝아졌다.
‘어쩌면... 그 사람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런 마음에 아스테리는 고민이 금세 사라지고 말았다.
---
“맞다, 언니 이름은 뭐에요?”
“난 아스테리야.”
“저는 아로마라고 해요!”
아스테리는 그 아이를 따라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걸어가자 나무로 지어진 집 하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똑똑
아스테리가 노크하자 잠시 후 어떤 청년이 문을 열고 나왔다.
노란 눈에 얼굴에 큰 흉터가 난 청년. 그 사람은 아스테리를 보자마자 약간 의심스러워하는 눈빛이었다.
그때 아로마가 아스테리에게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보세요!”
그리고 아로마는 청년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무어라 전하였다.
그 청년은 잠시 고민하더니 아스테리에게 물어보았다.
“길이라... 어디로 가는건데?”
“여기요!”
아스테리는 지도를 내밀었다. 그 청년은 아스테리가 가지고 있던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아, 엑스자 표시된 곳 맞지? 여기면 금세 갈 수 있을 거야.”
“정말요?! 다행이다...”
“그래도 지금 당장 가지는 말지 그래?”
“왜요?”
“요즘시기에는 크리쳐가 여기 주변을 엄청 돌아다니거든. 걔네들 줄어들려면 최소 일주일은 기다려야해. 그리고 너 상태를 봐서는 쉬는 것이 좋아 보일 것 같아.”
“...알겠어요!”
아스테리는 그제야 안도감이 들었다. 그나마 존재하는 목표... 그것에라도 닿을 수 있다는 희망에 기분이 가벼워졌다.
---
아스테리는 벽에 기대서 창문 바깥을 보았다.
찬란하고도 아름답지만, 너무나도 깊어 빠질 것 같은 검은 하늘은 별을 하나하나 수놓듯이 드러내기 시작했다.
자주 보던 밤.
자주 보던 하늘.
그럼에도 아스테리는 무언가 다른 느낌이 들었다.
한동안 느껴보지 못 한 편안함. 모든 것이 좋게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아스테리는 하얗고 푹신한 이불이 있는 침대에 드러눕고, 이불을 두 팔로 감싸 쥔 채 고요히 잠들었다.
...
“그렇게 편하게나 있다니, 정말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하지도 않아?”
천천히 아스테리의 머릿속에 목소리가 스멀스멀 기어들어오기 시작했다.
불길과 비명소리가 아스테리의 신경을 찌르고, 흐릿하게 보이는 형상...
아스테리는 애써 무시하려고 했다. 생각으로는 보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지만 눈은 어디로도 향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은 결국 그 형상을 보고 말았다.
사랑하던... 그리고 이젠 죽어버린 언니의 형상.
그 형상은 몸에 긴 칼이 꽂힌 채 아스테리를 붙잡고 있었다.
“제발, 제발 살려줘... 죽을 것 같아...”
그 형상은 계속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아스테리는 그것이 언니가 아닌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스테리는 무시하지 못했다. 그 형상에게 꽂힌 검을 빼내려는 순간, 그 형체는 언니가 아닌... 검은 무언가로 변하며 아스테리의 팔을 붙잡았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아스테리는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그것을 떼려고 했다. 하지만 그 팔은 아스테리를 놓을 생각이 없어보였다. 아스테리가 저항하면 저항할수록 더욱 세게 쥐어 팔에 자국이 남았다.
아스테리는 그 검은 형상을 보았다.
그 검은 형상은 천천히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미워했던 그 사람, 베리로 변하기도 했고, 곧 이어 또 다른 모습으로...
...초록 머리띠를 맨 모습.
아스테리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변하기도 했다.
아스테리 모습의 무언가는 아스테리를 보며 웃었다. 하지만 밝은 웃음이 아닌 어딘가 차가운 웃음이었다. 그것은 아스테리를 보며 아스테리와 똑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키고 싶다면서, 지킨 적은 있기나 해?”
심장이 멈추는 듯 하는 느낌이 들었다. 지킨 것... 지킨 것은...
아스테리는 그 질문을 바로 대답하지는 못했다. 그저 온갖 생각이 스쳐지나갈 뿐이었다.
“난...”
눈물이 나왔다.
“...모르겠어, 내가 지킨 것이 뭐였는지, 뭐일지도 모르겠어. 그냥 곁에 있는 것을 잃기 싫은 것뿐인데, 왜 다 지키질 못했지?!”
“네 잘못된 판단이랑 약함 때문이지 않을까?”
“...그러면 강해지면 될까?”
뜨거운 눈물은 아스테리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고, 그 눈물은 바닥까지 떨어졌다. 눈물을 아무리 닦아내도 멈추질 않았다. 계속 흘러나왔다.
눈물은 바닥을 채우고, 발에서 허리까지 차오르고, 머리까지 채우고... 그 눈물은...
...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그저 밝은 빛이었다.
아침의 햇살이 눈물로 흐릿해진 눈을 찌르자 아스테리는 정신을 차렸다. 하얀 응어리들도, 어둠도 모두 없었다. 그저 아침의 먼지와 빛, 창문 밖에서 오는 숲 향기, 그리고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뿐이었다.
아스테리는 침대 옆 책상에 있던 머리띠를 자신의 머리에 묶으면서 중얼거렸다.
“전부 꿈이야, 그러니까... 다 괜찮아.”
아스테리는 그렇게 되새기면서 평소처럼 하루를 시작하였다.
---
쾅쾅쾅!!!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크게 들리자 깜짝 놀랐다. 문을 열자 보였던 것은 다름 아닌 아로마였다.
“잘 잤어요?”
“어... 당연하지!”
아스테리는 억지로 웃으면서 말했다.
아로마는 그런 것 하나 눈치체지 못한 채 밝은 눈빛으로 아스테리를 보았다.
“잘됐다! 저랑 같이 노실래요? 어차피 며칠 동안 여기에 있으면 심심하잖아요! 그리고 여기에는 또래 애들이 별로 없단 말이에요...”
“그래, 어디로 갈건데?”
“제가 좋은데 알아요! 빨리 따라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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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로마는 아스테리의 팔을 붙잡고서 어디론가 향했다.
그곳은 계곡이었다.
물속의 조약돌과 가끔 보이는 물고기까지 다 보이는 그런 맑은 물로 이루어진 시원한 계곡이었다.
벌써 아로마는 아예 물에 풍덩 들어가 물을 흩뿌리며 놀고 있었다.
그런 순수하고도 행복한 모습 때문이었을까, 아스테리는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동시에 부럽다고 느끼기도 했다.
아스테리는 그런 풍경을 바라보며 품에 있던 악기를 꺼내들었다.
카쥬였다.
아스테리는 카쥬를 입에 물고서 불기 시작했다. 삑삑 거리는 소리가 주변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평소에 자주 부르던 노래, 그 노래를 연주하였다. 아스테리는 그 노래를 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다. 그 연주를 마치고 나서야 아스테리는 아로마도 그 노래를 얌전히 듣고 있었다는 걸 알게되었다.
아스테리는 부끄러워하며 물어보았다.
“연주, 괜찮았어...?”
“언니...”
“음?”
“언니 연주 짱 좋았어요!! 한번만 더 들려주세요!”
아스테리는 오랜만에 들어보는 칭찬에 새벽에 꾼 악몽조차 희미해질 정도로 기분이 좋아졌다. 아스테리는 그 기분을 따라 흔쾌히 연주를 하였다. 그렇게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연주를 하면서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아스테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과거와 비슷한 행복, 아스테리는 그 느낌을 잊을 수 없었다. 그 때문일까, 아스테리의 악몽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고, 아스테리와 아로마는 빠르게 친해져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엇이든, 어딘가에는 끝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평소와 다름없는 여름 저녁, 떠날 날까지 얼마 안 남았기에 더욱 좋은 기억을 남기고 싶었기에 아스테리는 아로마와 함께 산으로 올라가서 놀기로 하였다. 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는, 산의 중간에서 아로마는 떨어진 나뭇가지를 들고서 휘두르면서 놀고 있었다. 결코 자신에겐 다시 오지 못할 것만 같은 그런 끝없는 평화, 그런 모습에 아스테리는 조금은 쓸쓸하지만 행복한 눈빛으로 바위에 앉아 지켜보고 있었다.
“참... 가만히 있지 말고 같이 놀아요!”
아로마가 장난스러운 얼굴인 채 나뭇가지로 아스테리의 팔을 찔렀다. 아스테리는 웃으면서 일어났고 아로마는 자기를 잡아보라는 듯 뛰어다녔다.
한순간 이였다.
아로마가 발을 디딘 곳은 땅이 아니었다. 천천히 떨어져가는 몸에 당황한 아로마는 겨우겨우 절벽의 끝을 잡았다.
아스테리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아로마의 비명소리가 귓가에 닿자 천천히 그날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때도 비명이 가득했었다.
아로마의 손에는 점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도와달라는 말이 다시 들리자 아스테리는 정신 차렸다. 급히 달려가 잡아보았지만 아로마의 손은 천천히 미끄러져가기 시작하다가 이내 아스테리의 손을 놓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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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테리는 산을 급하게 내려갔다. 하지만 노을빛에 섞여 들어가 그 모습은 더욱 더 붉게 보이는... 그 관경은 처참했다.
초록빛이었던 잔디에는 곳곳에 튄 피가 천천히 스며들고 있었다. 주변은 쓸린 듯 자국이 남아있고... 그 중심에는 아로마가 있었다.
온 몸이 부서질 듯 뒤틀려있었고 어떤 곳에는 뼈가 조금 보이기도 했다. 그 몸 아래에는 피가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몸 하나 성한 곳 없이 죽어가는 모습에, 아스테리는 숨이 막힐 듯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기회가 있었다. 아스테리는 오카리나를 꺼내들고서 연주하기 시작했다. 오카리나 소리가 천천히 공중에 퍼나가기 시작하자, 아로마의 피부에 있던 상처는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고, 뼈까지 나왔던 몸은 금세 원래대로 돌아왔다.
얼굴 왼쪽을 빼면.
아스테리는 급한 마음으로 연주를 아무리 해보았지만 아로마의 상처가 고쳐지긴 커녕, 아스테리의 몸에 점점 무리가 올 뿐이었다.
---
아스테리는 새벽이 되어서도 잘 수가 없었다.
아스테리는 멍하니 침대에 앉은 채 있었다. 눈은 흐릿했고, 딱 보아도 제정신이라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수많은 죄책감과 후회 등의 감정들이 아스테리의 뇌 속을 헤집었다. 동시에, 아스테리의 귀에서는 목소리는 더욱 크게 들리기 시작하였다.
너 때문이라며, 망설였기 때문이라며
목소리를 무시하지도 못하고 아무 말 없이 아스테리는 자신의 손목을 꽉 잡아 쥐었다.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아스테리는 천천히 문 앞으로 가서 열었다.
아로마였다.
아로마는 벌써 상처 난 얼굴에 붕대를 맨 상태였다. 그럼에도 아로마의 표정은 아스테리와 달리 평소처럼 가벼운 표정이었다.
아스테리는 망설이는 표정으로 아로마에게 말하였다.
“... 미안해”
“뭐가요?”
“다친 거, 그거 말이야... 내가 그때...”
“......”
“진심으로 미안해. 내가 실수해서... 그때 망설여서...”
“언니, 있잖아요? 언니한테 화내려고 온 거 아니에요. 애초에 화낼 이유도 없잖아요.”
아스테리는 그 말에 당황한 기색이 되었다. 아로마는 신경 쓰지 않고 마저 이야기 하였다.
“진짜로 괜찮아요!”
“하지만 눈이...”
“이건 제 실수지, 언니가 고의로 그런 것도 아니잖아요. 그리고 상처가 아예 사라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절 살리려고 노력했잖아요. 그걸로 충분해요.”
아스테리는 아무 말 없이 눈물만 흘렸다.
아로마는 미소를 지으면서 아스테리를 안아주었다.
“괜찮아요, 그리고 고마워요.”
아스테리는 아로마의 말에 눈물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런 일에도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이... 마치 태양 같았다. 따갑기도 하지만 동시에 따스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상처를 입었음에도 위로해준 것이 미안하고, 고마웠다.
몇 분이고 아스테리는 눈물을 흘려댔다. 아직도 자신을 좋게 볼 수는 없었지만,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스테리는 숨을 내쉬고서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살짝 미소를 지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나도 고마워.”
---
이곳에 온지 1주일, 아스테리는 가방에 이때까지 가져온 물건들을 넣었다. 저번에 본 청년은 이미 준비를 다 한 상태였다. 아스테리는 떠나기 직전, 아로마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갔다.
“아마 난 먼 곳으로 갈거야. 그동안 잘 지내길 바래.”
“에이~ 안 말해도 잘 지내요!”
아스테리는 품에 있던 오카리나를 꺼내 아로마의 손에 올려주었다.
“고마웠어, 나중에 다시 만나면 좋겠네.”
“잘 가요!”
아스테리는 환하게 웃은 뒤, 그 마을을 나와 청년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
숲은 크리쳐가 이곳을 지나갔는지 오래되지 않아 흔적이 남아있었다. 청년은 그 모습이 익숙한 듯 나무에 표시를 하면서 계속 나아갔다. 몇 시간을 갔을까, 숲을 나오니 앞에 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었다. 청년은 아스테리에게 지도를 주었다.
“앞으로 쭉 가면 도시가 나올 거야, 그럼 난 돌아갈게!”
그 청년은 손을 흔들며 다시 숲속으로 들어갔다. 아스테리는 심호흡을 하고서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주변에는 아직 크리쳐가 남아있는건지 주변에 흔적이 보이곤 했다. 하지만 주변에는 흔적만 있을 뿐, 실제로 보이는 녀석들은 전혀 없었다.
이 넓은 곳을 걸은지 몇 시간이 지났을까, 벌써 달빛이 아스테리를 내리쬐고 있었다. 불편하긴 했지만 아스테리는 주변에 있던 돌에 기대 잠을 청하려 했다. 몰려오는 잠에 눈을 감으려는 순간, 이상한 감촉이 들었다. 여름밤의 온도에 비해 이상하리만큼 차가운 느낌... 아스테리가 눈을 뜬 순간 보인 것은 아스테리를 향해 침을 뚝뚝 흘리는 늑대형태의 크리쳐였다.
아스테리는 급하게 피아노의자를 들고서 그 크리쳐를 향해 휘둘렀다. 의자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정확히 얼굴에 명중시켰다. 그 크리쳐는 잠시 휘청거렸지만 금세 일어나더니 아스테리의 팔을 물고서 던져버렸다.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머리 쪽으로 떨어진 아스테리는 아프다는 듯 머리를 감싸 쥐었다. 다행이도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의자는 자신과는 꽤나 멀리 떨어져있는데다가 그 크리쳐 옆에 있었기에 바로 다가가기엔 너무 위험한 위치였다.
아스테리는 고민을 잠시 하더니 주변의 돌 하나를 집어 크리쳐에게 던졌다. 돌은 정확히 그 녀석의 이마에 맞았고, 화가 난 그 녀석은 빠르게 아스테리 쪽으로 달려왔다. 그 순간, 아스테리는 캐스터네츠를 꺼내어 여러 번 쳤다. 캐스터네츠의 능력... 그 크리쳐가 달려오는 속도는 매우 느려졌고, 그 틈을 타 아스테리는 의자 쪽으로 달려가서 집어 들었다. 그리고 아스테리는 의자를 크리쳐의 머리를 향해 한번, 등을 향해 한번, 그리고 다시 머리를 향해 한 번 더 내려쳤다.
그 녀석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자 아스테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스테리는 이곳에서 자기에는 너무 위험한 것 같다 생각하였다. 결국 자는 것은 포기한 채 다시 떠나기로 결정했다. 아스테리는 주변을 정리하고 가방을 드려는 순간, 갑자기 발목에 고통이 몰려왔다.
눈을 아래로 향하자 보이는 건 아까 쓰러트렸던 그 크리쳐였다. 그 녀석은 아스테리의 발목을 물고 있었다. 죽인 것으로 착각한 나머지 방심했던 것이었다. 거기에다 그 녀석은 아스테리에게 달려들어 몸으로 부딪혀 공격하였다. 아스테리는 움직이지도 못하는 채 공격당하려는 순간에 누군가가 나타나 그 크리쳐를 공격하였다.
딱 한 방, 그 크리쳐는 그 한 방을 맞고서 나가떨어졌다. 아스테리의 눈에는 그 한 순간이 빛나보였다. 선망... 아스테리는 그 강함을 보고선 그 사람을 선망하였다.
크리쳐는 확실히 죽은 듯 했다. 아스테리는 그 사람을 보았다. 그 사람은 검은 몸에 하얀 선글라스와 넥타이를 한 남자였다. 그 무엇보다 특이한건... 그 사람은 나무의자를 무기로 쓰고 있었다는 점이였다.
“괜찮으신가요?”
그 사람은 아스테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ㅇ...아, 네! 감사합니다...”
아스테리는 일단 움직일 수 있게 옆쪽에 있는 가방을 주워 카쥬를 꺼내 불었다. 물렸던 상처는 금세 아물고, 아스테리는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그 남자는 아스테리를 보며 노트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서 다시 말하였다.
“저기 있는 피아노의자는... 당신건가요?”
“네, 좀 이상하게 들릴지는 몰라도... 저 의자가 제 무기에요.”
그 남자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노트에 무언가를 더 적고서는 아스테리를 바라보았다.
“저는 체어맨입니다. 당신의 이름도 알려주실 수 있나요?”
“저는 아스테리에요. 아까 구해주셔서 감사해요, 체어맨씨.”
“그나저나, 이런 곳에 있는 이유는 뭔가요?”
“사실, 모험을 떠나고 있었거든요, 제 목표를 위한 모험. 하지만... 제대로 된 목표 지점도 몰라요. 일단 이 지도만 따라가는 중이니까요.”
체어맨은 잠시 고민하더니 아스테리에게 말하였다.
“혹시, [원탁의 의자]에 들어오실 생각 없으신가요?”
“...네?”
“의자를 들고 싸우는 사람들이 모이는 클랜... 이라 할 수 있겠군요.”
“????”
의자를 들고 싸우는 자들이 모인 곳, 일반인이라면 대부분 황당하거나 이상하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스테리는 조금 다르게 느꼈다.
어쩌면 이곳은 또 다른 새로운 길이 될지도 모른다는 믿음이 생겼다. 그리고...
“같이 의자를 쓰는 사람을 만난 건 단순한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죠. 아니면 목표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고요.”
‘어쩌면 기회일지도 몰라. 알지?’
아스테리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그 목소리가 남아있었다. 마치 그 목소리에 이끌리 듯 입을 열었다.
아스테리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했다가 대답을 내놓았다.
미래를 한 치도 알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아스테리는 이 길을 걸어가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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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했어요. 그 원탁의 의자라는 곳, 들어갈게요.”
아스테리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
.
.
“...... 그때 어떤 크리쳐한테 공격 받았었어. 그때 리더가 그 녀석을 물리치면서 만났던 것 같아! 그 이후로 여기로 왔고...”
“오......”
“그러면 너는 어떻게 이 클랜에 온 거야?”
“그거는...... 나중에 알려줄거지롱!”
“에이......”
아스테리는 잠시 실망스럽다는 듯 표정을 지었다가 다시 웃었다.
이곳에서의 이야기는 어쩌면 한참이나 멀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스테리는 이 이야기의 끝을 향해 계속 나아가고 있다.
-end......?